불평등에 관한 영화 기생충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불평등과 공정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능력주의의"에 대한 설명을 차이 나는 클래스에서 듣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회에도 적용해 생각해봅니다. meritocracy: (능력주의) a social system, society, or organization in which people get success or power because of their abilities, not because of their money or social position:
능력주의는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당연히 나의 능력으로 성공했기에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능력주의가 실현되면 공정한 사회이다라는 것이 설문에서 나타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 이것은 사실일까?
예를 들어 스포츠계에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을 예로 들으면, 당연히 그들은 큰 부를 얻습니다. 차이 나는 클래스에서는 미국의 농구선수를 예로 들었지만 만약 축구선수 손흥민을 예로 들면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일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은 정당한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봅시다.
1.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은 내 능력 때문이다. =손흥민 선수가 노력을 많이 해서 훌륭한 축구선수가 된 것은 맞지만 모두가 같은 노력을 했다고 해서 손흥민 선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손흥민 선수는 타고난 혹은 유전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노력을 해도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데 이것은 공정할까?
재능은 =능력? 같은 노력을 해도 성과는 다름
2. 성공에 대한 보상은 정당한가?
손흥민 선수만큼 훌륭한 노력을 한 비인기 종목 스포츠 (예를 들어 역기, 높이뛰기 등)의 경우 노력의 양으로 따지면 같다고 쳐도 인기 없는 스포츠의 운동선수들에 대한 보상의 차이는 큽니다. 이것은 공정한가?
어쩌면 인기 있는 종목을 잘하고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에 태어난 것은 행운일 수 있습니다. 만약 손흥민 선수가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면 훌륭한 재능을 타고나고 같은 노력을 했다고 가정하더라고 금전적인 보상과 인기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공은 무조건 성공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 성공한 사람의 보수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승자의 오만함과 패자의 굴욕을 합리화하는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로만 사람을 평가한다면 생기는 두 가지 문제
1. 내 우월한 능력 때문이다 _ 승자의 오만은 당연함
2. 뒤처진 사람들은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기 자신을 탓함_패자의 굴욕은 당연함
능력주의로만 그동안 평가되었던 시대를 살던 미국 시민들을 예로 들면,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이 사실은 예견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진보당과 공화당은 수십 년간 '불평등에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능력주의 사회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버락 오바마의 경우 '노력하면 할 수 있다' (You can make it if you try)라는 문구를 자주 이야기하며 미국은 평등하고, 공정하며 노력으로 모든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세계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노동자들의 불평등 지수는 상승했고 결국 분노했습니다. 빌 클린턴과 오바마 시대는 빈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일부 마련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세금으로 월가를 구했지만 정작 세금을 낸 국민은 빈곤으로 내쳐지는 등 많은 시민들은 불평등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분노가 오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수많은 비 대졸 백인 유권자 노동자들은 임금 정체, 엘리트에게 무시당한 느낌을 경험하고 미국의 부유한 1%가 하위 50%의 부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때 비 대졸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고학력 백인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습니다. 트럼프가 노동자에게 좋은 정책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지지했던 이유는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노 표출 연설이 비 대졸 백인 유권자들의 체증을 해소해 준 것이라 여겨집니다. 당시 트럼프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엘리트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비 대졸 백인 유권자들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연설에서 자주 했습니다.
미국의 많은 노동자들의 분노는 능력주의 태도에 대한 결과이고 이 불만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 배경 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2016년 대선 당시 중년 백인들이 빨리 사망하는 지역에서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임금과 세금은 어떤 기준에 따라 마련되어야 할까라는 난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능력주의식 평가를 없앤다면 어떤 기준으로 임금과 세금을 책정해야 할까.
이것은 정치적으로 풀 과제이기는 하지만 사회에 대한 기여도에 대한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해서 책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카지노를 운영해서 큰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코로나 19를 치료해주는 의료진보다 더 많은 부를 쥐고 있는데 공동선에 대한 기여도 common good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수입은 아이러니합니다.
게다가 세금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경우 배당소득세 혹은 이자소득세가 노동에 대한 근로소득에 대한 이자보다 낮게 매기는 것도 일의 존엄성 시각에서 보면 정책적 미스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워런 버핏이 내는 세율보다 비서가 내는 세율이 더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불평등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세금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금정책과 세금정책도 능력주의 평가보다는 공동선에 대한 기여도 또는 일의 존엄성, 노동의 가치에 대한 보장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품격을 유지할 기본적인 것을 보장하고, 공동선에 기여하는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윤리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정치와 국민 모두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깊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마틴 루더킹의 연설 중 청소노동자들에게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은 의사만큼 중요하다, 당신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질병이 창궐할 것이다.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라는 문구가 가슴속 깊이 박힙니다.
humility 겸손, 겸허 '내가 잘했다'라고 믿는 능력주의적 평가보다 모든 요소에 작용해온 운의 역할에 감사하며 공동선에 기여하며 노동의 존엄성에 감사하면 매사 겸허한 자세로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 나는 클래스 재방송
편성:JTBC
3.18 목요일 16:50 197회 22:30 199회
3.19 금요일 4:50 218회
3.20 토요일 2:30 199회 4:40 219회
3.22 월요일 4:30 199회 16:50 (예정)
3.23 화요일 2:10 (예정)
3.24 수요일 4:40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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